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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기! :: 2007/08/22 00:40

혹은...
"한 쪽을 비판하지 않고 한 쪽의 손만 조용히 들어주는 것은 어떻게 봐야할 것인가?"
이런 문제들은 [박치기!]를 보면서 끊임없이 반추하게 되는 질문이다. 다른 사람들 눈에 어떻게 보일지 알 수는 없는 일이지만, 또 동시에 신경이 쓰인다.
관련기사를 읽고, 지인 두 분과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나눴던 터라, 박치기를 감상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감상 도중 손님을 맞이해서 도중에 흐름이 끊기기도 했고... 하지만 단지 그런 이유 뿐이었을까.
[박치기!]는 모호하다. 그저 아무런 생각없이 영화가 가고자 하는대로 흐름을 타서 보고 싶은 마음 또한 굴뚝같았으나, 도저히 쉽게 그럴 수가 없었다. 영화 자체가 취하는 살짝 모호한 입장 때문에 그렇기도 하고, 생각할 여분을 많이 주는 연출 때문이기도 하다(혹자는 영화가 빠르다고도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도중에 쉬면서 봐서 그런지 딱히 그렇다고는 느끼지 못했다).
유치하지만 솔직하게 물어보자. 이 영화는 우리 편인가 아닌가.
어쩔 수 없이 신경쓰이는 이 질문에서 애써 벗어나 담담한척 하려하는 것 또한 유치한 일 아닐까. 문제는 이 질문을 잊을만큼 [박치기!]란 영화가 입체적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일본'이 작품에 나오지 않는 것에 있다. 의도나 방향성은 정말 마음에 든다. 하지만 모든 현상의 중심이자 원인인 일본의 치부를 들추지 않는다는 점은 어떻게 봐야할 것인가. 데려가고자 하는 지점을 알았기에 '그냥 순수한 마음으로 즐기고 싶었어!'라고 감상 후속으로 참 많이도 외쳤더랬다. 그래서 이 영화의 평가는 머리아픈 일이었는데, 재미있게도 씨네21 칼럼에서 세 필진이 같은 논지를 두고 한번씩 주고받은 흔적을 발견했다.
1968의 청춘, 그 박제된 역사, <박치기!> (남다은 - 2006.3.1)
새로운 정치성을 주목한다, <박치기!> (황진미 - 2006.3.8)
[B딱하게 보기] 짝퉁의 가치, <박치기!> (김봉석 - 2006.3.10)
좋은 의도가 결함을 메워주진 않는다, <박치기!> (남다은 - 2006.3.15)
좀 우스운 얘기이지만 난 어느 쪽도 틀린 말은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남다은씨의 화법이 거슬리기는 하지만) 그래서, [박치기!] 감상에는 문제가 생긴다. 그렇기에 그런 쟁점들이 맞부딪히는 포인트에 주목하고 싶다.
미리 밝히겠지만, 100% 감동적으로 감상하지는 못했지만, 나 또한 [박치기!]의 손을 살며시 잡아주고 싶은 입장이다.
그들의 분노
조선고교 학생들의 분노와 아웃사이더적인 행동은 왜일까.
말그대로 그들이 아웃사이더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흑인들은 왜 폭력적인 이미지로 각인되었는가. 우리가 홀로 남겨졌을 때 외로움은 어째서 억하심정을 불러오는가. 공부 이외의 것을 하는 아이들은 어째서 소외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일까.
그 이유를 알고 있기도 하고 모르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우선 분노가 싹트는 것은 것은 어떤 사회적 이유 이전에 자신의 정체성과 자존심이 갈등을 빚어내기 때문이다.
[박치기!]가 쌩 얌체처럼 문제에서 눈을 돌리지는 않는다. 대사로만 처리하기 때문에 임팩트는 오지 않지만 영화에서는 재일 원로의 입을 빌려 그들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일본인' 사카자키(오다기리 죠)의 입을 빌어 일본의 과거행적의 정당성을 추궁한다. 사카자키가 희화적이고 히피적인 캐릭터라서 무게감은 떨어지지만... 재일원로의 말들은 사실 대사로 처리하는것이 의외로 그 엄숙함 때문에 적당했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도 일본에서 만든 영화인데 더 이상 무엇을 얼마나 더 바랄 수 있나 싶다. 대놓고 일본을 욕하기 바라는 것은 조금 억지가 아닐까. 적어도 이런 시도들이 - 마치 영화내용처럼 - 작은 시작점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조선고교 학생들도 불량하게 비춰지기는 하지만 그것은 불가피한 일이고 또 그들을 정감있는 시선으로 다룬다는 것도 느껴진다. 극성스럽지만 도를 넘지 않는 일본인, 도를 넘지만 인간적인 재일청년들... 어찌 보면 무엇을 더 중시하는가에 대한 국민성의 차이를 드러내기도 하는 것 같다.
일본인들의 한국어연기는 칭찬받을만 하다. 합숙을 하면서 영화를 위한 여러 맹훈련을 했다고 하는데, 열심히 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실 어설픈 한국말은 크게 문제삼을 수 없기도 하다. 실제 해외에서 어릴적부터 자라난 아이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개 한국말에 서투른 부분이 있다. 영화에서 이정도로 신경을 썼다는 것은 - 영화의 여러 면모가 그렇지만 - 그 자체만으로도 높이 사줄만한 일이다. 어설픈 한국말이나마나 그 위에 뚜렷한 감정을 실어 살렸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한가지 짚을 것은 있는데, 좋든 싫든 그 근본적 원인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박치기!]의 영화적 구성에는 결함이 있다. 영화는 끊임없는 위트와 복잡한(이라기보다는 다양한) 이야기를 뒤섞어서 이 문제를 벗어나려 하지만, 쿄오스케와 경자의 사랑이야기로 이 극을 관통하고 이끌어나가기에는 그 뒤에 깔린 배경의 존재감과 무게가 너무 크다. 그 배경과 메인스토리의 결합이 충분하지 못해서이기도 한 것 같지만, 또 동시에 [박치기!]는 일본인보다 한국인이 더 총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극중에 비춰지는 1968년 일본의 사회적 현상들은 곁가지 양념에 불과하다).

초중반 막강 위력을 발휘하는 홍명보와 김래원 콤비. 김래원은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됨에 따라 중반부터 실종된다;
이 영화에는 상징성이 굉장히 명백한 것들이 많이 나오는데... 강이나 박치기도 그렇지만,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그것들 이전에 '폭력(이라기보단 타격?)'이 갖는 의미와 카타르시스이다. 이 영화에서는 폭력의 잔혹함과 폭력으로 분출해내는 울분을 동시에 전달하고 있는데, 다른 걸 떠나서 이 점은 참 좋았다. 개인적으로도 가장 짠했던 장면은 너무 들이댔던 클라이맥스와 결말부보다는 도중 장례를 치를 때에 안성이 망치로 문을 부수는 장면이었다. 억울하게 죽은 친구, 한국식으로 치루고 싶은 장례, 일본식 건물구조에 막혀 들어갈 수 없는 관... 어떤 면으로는 이 시퀀스 하나에 모든 것이 담겨있다. 안성과 한호의 세련되지 못하지만 가슴 후련한 해법은 (슬프게도) 어설픈 한국말을 울부짖으며 망치로 일본 건물 벽을 후려쳐내는 것이다! 그 순간, 스토리와 시퀀스를 통해 막막하게 쌓여가던 울분이 가슴아프게 폭발한다. 굉장히 파워풀한 장면이다.
처음 '달걀이 먼저인가 닭이 먼저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지만, 사실 어느 것이 먼저라도 결과는 같을 것이다. "사실을 알려서 마음을 잡아주게 할 것인가, 마음을 이끌어서 사실을 알고 받아들이게 할 것인가..."
힘들고 거칠지만 떳떳함을 잃지 않는 재일청년들, 한국남-일본녀의 결실과 일본남-한국녀의 가능성으로 밸런스를 맞추면서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배려, 쪽수에서 밀리지만 (아마도) 패배하지 않고 돌아온 그들... 비록 레오폰은 번식이 불가능한 흉측한 동물이지만 (뭐 여기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을지 모르겠지만 -_- 사실 현실을 반영하기는 한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한국에 대한 조용한 배려는 받아줄만하다고 생각한다.

괜히 삘받아서 올려보는 레오폰 사진
무엇보다 [박치기!]는 비판하기가 아닌, 화합하기 위한 영화이다. 미래를 열고 세상을 움직이는 근본적인 원동력은 과거의 망령도 소수의 엘리트나 관료도 아닌, '지금' '이 순간'의 젊은이들이다. [박치기!]가 사회적, 정치적 의미까지 아우르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하나가 전체이고 또 작은 시작에서 큰 일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충분히 곱씹을 가치가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가끔은 이렇게, 가끔은 저렇게...
곧 속편이 나온다는데, 달갑지는 않지만 이왕 나오는거 잘 나왔으면 한다.
주관적이지만 느껴지는 영화적 결함이나 미진함 때문에 갈등 많이 했지만, 영화의 의도와 독특한 가치 등을 생각해 등급은 A-로.
등급: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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